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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의 목소리 VOM 2014 8월호 이주민의 목소리 - 부산에서 만난 큰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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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73회 작성일 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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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직장은 경기도에 있었습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때, 방글라데시 사람 4명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와 계속 같이 있으면서 나를 도와 줄 것이기때문에 일만 열심히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는 키가 작은 나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회사를 바꿨습니다.

두 번째 회사는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사람 13명, 필리핀사람 4명, 중국사람 6명, 한국사람 23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월급도 제날짜에 딱딱 나왔습니다. 그 당시 최저임금이 4,700원 정도였는데 우리는 5,500원을 받았습니다. 기숙사도 1인 1실이고 외국인을 위한 식당도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정말 잘 해주었습니다. 두달에 한번씩 회식도 했습니다. 보너스도 잘 챙겨주었습니다. 바쁠 때는 사장님이 와서 함께 일을 했습니다. 사장님은 높은 사람이었지만 우리를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었습니다. 매우 힘들었지만 마지막 회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도가 났습니다. 3개월 월급 600만원 정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이 “회사에 돈 없다. 노동부에 신고해서 받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사장님과 함께 열심히 일했지만 돈은 없고... 정말 슬펐습니다. 친구들은 다른 회사로 갔고 저는 동네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가 있는 곳, 부산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 사람 두 명이 이미 부산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부산사람들은 마음씨 좋고, “여자사람도 이쁘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온 날 무솔라(이슬람 기도소)에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다음 날 까말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자기 회사에서 일하자고 했습니다. 한국어를 못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2012년 5월부터 그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선박부품을 페인팅(도장)하는 곳이었지만 페인팅은 할 줄 몰라서 3개월동안은 정말 힘들게 일했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한국인 반장님이었습니다.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까말은 비자가 끝나고 방글라데시로 귀국했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사람 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꼭 한국어를 배워야했습니다. 혼자서 너무 외로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우리 회사 반장님이 나에게 너무 잘 해주었습니다. 마치 큰 형님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회사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반장님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반장님 부인 혼자서 양말과 여자 속옷을 팔았는데 지금은 반장님과 같이 남자 옷들을 팝니다. 얼마 전에 쉬는 날 나도 반장님 부부와 새벽부터 거리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1개에 5천원, 3개에 만원, 싸다! 싸다!”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판매에 열중하니, 주변 사람들이 반장님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외국사람은 누구냐고... 방글라데시 사람인데 남편의 직장 후배였다고 하니,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한국어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옷을 판 경험은 아주 재미있는 추억입니다. 그날 우리는 소고기를 1kg 사서 셋이서 다 먹었습니다. 게다가 반장님이 고생했다며 10만원도 주었습니다. 반장님을 큰 형님이라 여기기 때문에 반장님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 돈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반장님은 꼭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장님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줬을 뿐 아니라 회사에서 누가 나에게 야단을 치면 마치 가족처럼 그 사람에게 따져 주었습니다. 정말로 큰형님 같았습니다. 반장님을 부산에서 만난 것은 큰 행운입니다.

- 글/사진인물 : 모민 호세인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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